사물을 볼 때 너무 가깝거나 멀어도 볼 수 없으며
아름다운 소리
스피커로부터 너무 가깝거나 멀어도 들을 수 없고
적당한 거리 유지해야 듣거나 볼 수 있습니다.

웃음 모양 따라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
슬픔도 그 표현, 소리로 달리 불려 집니다.
어떤 웃음과 슬픔이 더 기쁘고 가슴 메이게 하는지
단정할 수 없지만
보일 듯 말듯한 미소는 기쁨 배가시키고
느낄 수 있는 듯 스치 듯한 흐느낌
우리네 눈물샘 더욱 자극하기도 하지요.

중년엔 사람과 정이 더욱 그리워지는 때지만
가끔은 짐짓 모른 척 그냥 지나쳐주길 바라며
조금은 과장된 몸짓 보이기도 하는
이중적 속내 비치곤 하기도합니다.

무엇보다 그저 우리 모두에게 아픈 마음 없으면 좋겠지만
행여 내 주변에 이런 친구 보이시거든
혹시 ‘아름다운 무관심’ 바라는 건 아닐지
잠시만 생각해 보고 적당한 거리에 서 계시는 건 어떨까요?


“아름다운 무관심은 관심이 없음이 아니라
가장 가까이에서 지켜주는 사랑스런 배려입니다.“

그 배려가 기도입니다.